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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쉽지 않은 미국 생활

미국에서 겪은 코로나 셧다운 경과

by nomad worker 2022.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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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코로나의 시작

중국에서는 이미 코로나가 잔뜩 퍼졌고, 한국에서는 슬슬 퍼지기 시작했고, 미국에서는 아직 남 일로 취급하던 때였다.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연구소로 출근을 했는데, 그 날 남학생 한 명이 스페인을 다녀왔는데 독감 증세가 있다며, (코로나가 판데믹이 될 줄 몰랐던 찰나의 시절에나 가능했던) 농담으로 자기가 스페인에 있는 동안 우한에서 출장 온 친구와 놀려다녀서 코로나에 걸린거 아닐까 했다. 다들 대수롭지 않게 농담으로 넘겼지만, 중국에서 온 시니어 스텝은 달랐다. 당장 학생에게 집에 가서 쉬라고 했고, 그 옆에 있던 나 까지 당장 퇴근하라고 했다. 우리는 땡땡이 친다고 좋다고 집으로 갔지만, 그 스텝이 너무 오버하는거 아닌가 했다. 그러나...

 

2020년 3월, 미국 셧다운 시작

코로나는 생각보다 커져, 판데믹이 되었다. 갈수록 출근하면서 코로나 얘기를 하는 빈도가 늘었고, 그러면서 지난번 중국인 스텝이 오버를 한 것이 아니었다는 얘기를 하며(그는 우리보다 훨씬 먼저 코로나가 어떤건지 잘 알고 있던 것이었다...), 연구소를 셧다운 하느니 마느니 얘기가 돌았다. 결국 내가 있던 일리노이는 2020년 3월 초쯤 셧다운 명령을 내렸고, 마찬가지로 연구소 출근도 무기한 미뤄졌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임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5월 쯤이면 다시 복귀 할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이 소문은 오프닝이 8월로 미뤄졌다는 소문으로 바뀌었다가, 곧이어 백신 나오기 전 까진 계속 셧다운 상태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으로 바뀌었다.

 

2020년 4월 부터 백신 나오기 전 까지

출근을 하지 않으며 일을 하니, 당연히 효율은 많이 떨어졌다. 모든 스케줄이 늦어졌다. 그 당시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는 부모님이 이 김에 근처로 오셨다. 두 분 다 원격 근무가 가능한 직업이었다. 한 분은 엔지니어로, 회사에서는 아예 7월 까지(그러나 이제는 무기한 연장되어) 원격 근무를 하라며, 집에 근무공간을 차릴 비용을 보너스로 주었다고 했다. 다른 한 분은 학교 선생님인데, 보수적인 학교 운영진들이 선생님들 출근을 강요하여 선생님들이 단체로 시위하고 퇴사할 때, 같이 그만두었다고 하셨다. 그 후, 원격으로 근무하는 다른 교사직을 찾아 근무하셨다.

 

처음에는 코로나가 얼마나 잘 퍼지는가에 대한 감이 없었다. 외출을 정말 자제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식료품점에 가는 식이었다. 식료품점에 가서도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다니고, 항상 장갑을 끼고 쇼핑을 한 후 장갑을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오버지만, 사 온 물품은 전부 클로록스 페이퍼로 닦았다. 그 후, 가이드라인이 좀 더 구체적으로 변하면서 그런 불편한 짓은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초반에는 사람들이 패닉 상태로 생필품을 챙겨서, 화장실 휴지를 포함해, 키친타올, 클로록스 와이프 등 휴지란 휴지는 전부 구매하기도 어려웠다. 마스크도 마찬가지였다. 운이 좋게도 한동안 친구네 부모님이 겨우 구해주신 마스크를 쓰고 버틸 수 있었다. 화장실 휴지가 마트에 풀리기 시작 했을 땐, 보일 때 마다 한 묶음씩 샀다. 모든 가게에서 휴지는 한 명당 한 묶음만 사는 것으로 제한했다.

 

식당이나 카페는 처음엔 테이크 아웃만 가능했다가, 외부 좌석에 앉는 것은 허용 해 주었다. 그렇지만 가끔 바글거리는 미국인들을 보면 자주 갈 엄두가 나지는 않았다. 날씨 좋은 시기를 제외하고는 당연하게도 장사가 코로나 이전에 비해 훨씬 잘 안 되는 것 같아 보였다. 코로나 감염율에 따라 내부 좌석 사용을 금지했다 말았다 했던 것 같다. 많은 식당들이 겨울에는 패티오를 천막으로 둘러놓고, 난방을 하면서 나름 실외라고 우기며 그냥 영업을 하기도 했다. 동네 식당이나 카페를 가니 직원들이 많이 줄었다. 회사에서도 사람들을 해고하거나, 임금을 내리거나 동결하는 곳이 많았다고 했다.

 

판데믹이 길어지다 보니, 집이 점차 감옥같이 느껴졌고, 자주 보는 사람들도 동네 주민 세 명 정도로 제한되었다. 많이 갑갑해졌다. 이 시기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마스크를 안 쓰게 해달라고 시위도 했고, 사람들의 사회생활이 줄어들다 보니 가짜뉴스도 많이 퍼졌던 것 같다. 내가 살던 동네는 99%가 백인인 시골 동네였는데, 이 쯤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시위를 많이 하고 다니고는 했다. 일요일 아침에 브런치 먹으러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는데, 카페가 큰 도로 옆이었고, 그 도로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오토바이/차량 시위를 하는걸 몇 번 봤다. 항상 일요일 늦은 오전이었다. 그나마 대도시 근교여서 그렇게 보수적이지는 않은 동네라, 아시아인이라고 해서 위험하지는 않았다.

 

내가 살던 동네의 트럼프 차량 시위 행렬. 아주 길고, 엄청 요란하다. 나팔 소리에 오토바이 굉음에... 폭탄이라도 터진 줄 알았다. 지지자들은 전부 차량 안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대부분 번호판을 가렸다. 길거리 사람들을 보며 조롱하고 지나간다. 싸움이 날 뻔 한 것도 봤다.
주변 사람들은 카페에서 밥먹다가 뛰쳐나가 트럼프 지지자들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게다가 이 시기에 집값이나 주식이 폭등한건 한국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미국도 마찬가지. 코로나 판데믹 동안 전 세계 집값이 많이 상승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미친 게임스탑 주가 폭등사건까지 일어났던게 기억난다. 주변에 참여한 사람이 있었다.

 

2021년 초 코로나 백신이 나온 뒤

드디어 기다리던 백신이 나왔다. 의료진들과 치명률이 높은 집단부터 먼저 맞고, 내 차례는 4월 중 왔다. 다들 백신을 맞으려 해서, 거의 수강신청 하듯 예약하고 맞으러 갔다. 초기에는 다들 백신을 못 맞아서 난리였고, 그래서 한동안 백신 접종률이 쭉쭉 올라갔는데, 모든 주에서 반 정도를 찍고 나서는 접종률이 천천히 증가했다. 접종률은 보수적인 주는 거의 30-40%, 진보적이어도 60% 쯤에서 부터 천천히 증가했던 것 같다.

 

백신을 맞고 2주 후, 비슷한 시기에 같이 백신 접종을 한 친구들과 거의 1년만에 처음으로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술을 마셨다. 드디어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 마침 2020년에 고생해가며 신청했던 영주권마저 비슷한 시기에 나왔어서, 이래저래 드디어 해방감을 느끼던 시기였다. 2020년은 정말 길고 힘들었다...

 

백신이 나오면서 점차 식당들이 개방을 했고, 그러면서 이제는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를 많이 냈다. 그런데 식당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이전에 비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얘기가 있다. 최근까지도 식당에서 사람 구한다는 팻말이 많이 보였다.

 

코로나가 끝이 나려나 싶지만... 제발 곧 끝났으면 좋겠다. 이게 몇 년째 소원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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